항공·철도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사고조사기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조직의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국토교통부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어, 법적·제도적 한계가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조사 대상이 되는 부처가 조사 주체가 되는 구조로 인해,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와 달리 미국과 일본은 조사기구의 기능적·조직적 독립성을 법률로 명확히 보장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5년 4월 18일 [항공·철도 사고조사, 독립성·전문성 강화의 필요성과 개선방향]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사고조사체계의 구조적 개편 필요성에 무게를 실었다.
국토부 소속 '사조위'…법적 '독립성' 명시, 구조는 종속
우리나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에 따라 국토교통부 소속으로 설치되어 있다. 법률상 "사고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조사 대상이 되는 부처의 내부 조직으로 편제되어 있어 '형식적인 독립'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같은 법 제4조 제2항은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고조사에는 관여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동시에 "일반적인 행정사항에 대해서는 위원회를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해, 조사기관 운영 전반에 대한 국토부의 통제력을 열어두고 있다.
실제로 위원 임명, 예산, 인력, 장비 등 모든 행정 권한이 국토부에 집중돼 있어 독립성과 자율성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구조다.
특히 법 제6조와 직제령 제47조에 따라 국토부 항공정책실장과 철도국장이 사조위 상임위원을 겸직하게 돼 있다. 이는 정책 집행 책임자가 동시에 사고조사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적 모순도 지적된다.
제4조(항공ㆍ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설치) ①항공ㆍ철도사고등의 원인규명과 예방을 위한 사고조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국토교통부에 항공ㆍ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라 한다)를 둔다. ②국토교통부장관은 일반적인 행정사항에 대하여는 위원회를 지휘ㆍ감독하되, 사고조사에 대하여는 관여하지 못한다. |
미국과 일본, 조사기관 '독립성' 법으로 보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1974년 제정된 [독립안전위원회법 Independent Safety Board Act]에 따라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를 교통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NTSB는 대통령 지명과 상원 동의를 거쳐 임명된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동일 정당 출신 위원은 3인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해 정치적 중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일본의 운수안전위원회(JTSB)는 국토교통성의 외청이지만, 예산·인사·운영 면에서 법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 위원 임명 시 중·참의원의 동의가 필요하며, 조사 보고서 발간과 자료 공개 권한 역시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행사한다.
보고서는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기준을 인용하며, 각국의 항공사고조사기관은 관할 부처로부터 기능적·조직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항공사고 조사 지침서(ICAO Doc 9756)에 따르면, 조사기관은 예산·인력·보고서 발간 등 전 과정에서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조사 대상 기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조위는 여전히 국토부 내부 조직으로 편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사권과 조사장비 요청권까지 국토부 장관에게 의존하고 있어 ICAO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직 분리와 인사 개편'…상설 '통합 독립사고조사기구'으로 개편 제언
보고서는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조사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핵심적인 대안은 조사기관의 소속 분리다. 최대한의 독립성 확보 차원이다. 국토부 산하에 위치한 현재의 사조위를 국무총리실 산하로 이관하거나, 항공·철도·해양 사고를 포괄하는 통합 독립사고조사기구로 재편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이는 조사 대상 부처로부터의 실질적인 분리로 공정성을 확보하고, 상설 위원회로써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아울러 법 개정을 통해 국토부 실·국장이 상임위원을 겸직하는 구조를 폐지하고, 외부 민간 전문가 중심의 인사 구조로 전환해 조사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보장할 필요성도 언급됐다.
보고서는 또한 순환보직 중심의 관료 시스템을 탈피하고 장기근속이 가능한 전문 조사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민간 전문가와 학계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입하고, 지속가능한 전문성 확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원 임명 과정에서도 국회의 동의 절차를 도입해 외부 견제 장치를 강화하고, 정치적 중립성과 국민 신뢰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개선 과제로 제시됐다.
현재 제22대 국회에는 사고조사위원회를 국무총리실 또는 대통령실 산하로 이관하거나, 교통 전 분야를 통합 관리하는 국가교통사고조사위원회 설립을 골자로 한 법안들이 다수 계류 중이다. 사조위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향후 국회 논의 결과가 실질적인 제도 개편의 분수령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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